낙서장

카미카제 특공대와 야스쿠니 신사. 그리고 그 안의 조선인들.

fervour12 2014. 3. 1. 23:43

오늘의 마지막 포스팅. 오늘 하루만 벌써 세 개를 써서 더이상 안 쓰려 했는데 '궁금한 이야기Y'를 보는 바람에... -_-;;

 

삼일절이다 보니 카미카제 특공대로 죽은 조선인 병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그동안 국내에서 (죽은 병사의 가족, 친지들의 의사에 의한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다지 이슈가 되지는 않았던 듯 하다.

 

내가 카미카제 특공대에 있던 조선인 비행사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2002년에 나온 일본 영화 '호타루(반딧불)'를 보고 나서였다.

 

 

 

개인적으로 수업에 쓸 자료로 한국과 연관이 있는 일본 영화를 찾다 발견한 영화 '호타루'. 그냥 아무 생각없이 DVD를 구매해 영화를 보고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었다.

 

영화에 대한 정보는 여기로.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3241

 

아무튼 영화 안에서 카미카제로 죽은 조선인 병사 김선재. 그를 사랑해 그의 뒤를 따라 죽으려 한 일본인 약혼녀. 그리고 그녀를 구해 부부의 연을 맺은 김선재의 일본인 친구. 세월이 지나 아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자 부부는 김선재의 유품을 들고 그의 고향인 안동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를 부정하고 일족의 치부로 여겨 그의 유품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일부 친지들.

 

그 부분에서 친지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부정하고픈 복잡한 심정이었다. 때문에 결국 수업 자료로는 쓰지 못했었는데 방금 본 '궁금한 이야기Y'와 오늘 읽은 기사 '유관순 열사의 조카, 친일파 후손들은 잘 사는데'로 인해 그 얽혔던 심정에 대한 의문점이 심플하게 풀렸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301082305940

 

 

사실 비행사가 되기 위해 일본의 학교까지 건너갔다는 것은 조선에서도 어느 정도 지위와 재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카미카제로 강제로 동원되었다 하더라도 학교에 들어간 것은 본인의 의지와 그 뒷받침이 된 집안의 배경이 있다. 그는 죽어도 독립운동가로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집안에 어떠한 위해도 가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관순 열사를 위시해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은 지금 어떠한가. 설명이 필요없으리라. 3대가 지나도 여전히 그들은...

 

그렇다... 젊은 청춘이 일제의 강요로 목숨을 잃은 것도, 그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전범들과 같이 모셔져 있는 것도,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유언장, 그들에 대한 기록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남기려는 아베의 만행도, 때문에 그들도 희생자이기는 하지만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후손과 같이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오늘 확인해 10년도 더 전에 느꼈던 위화감과 복잡한 심정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10년 전에는 왜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 나의 무지도 있었겠지만... 독립 운동가 후손이신 분의 인터뷰 내용으로 끝맺어 본다.

 

[인터뷰:권영좌, 의병 권종해 손자]

"어디 가서 있으면 뒤따라오고... 친일파 족속들은 일본 사람보다 더 악랄했어요. 핍박하고, 불이익을 계속 받게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