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문제 제출하고 인쇄소로 맡기러 나가는 길에 어디선가 만리향의 향이 훅 하고 코 끝을 감돈다. 어딘가에 꽃이 아직까지 남아있나 보다. 날아가고 있던 정신줄을 붙들게 해 준다.
만리향의 원 이름은 금목서. 선비들에게 사랑받았던 꽃으로 사랑채 앞 뜰에 심어두고 보고 즐기는 꽃이었다고 한다. 이전엔 천리향과 만리향의 차이를 막연하게 향이 천리를 가고 만리를 간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만리향 꽃이 가을에 피고 천리향은 봄에 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꽃의 모양과 색도 전혀 달랐다. 금목서는 라일락꽃과 비슷하게 생겼다
더불어 가을에는 금목서뿐만 아니라 은목서라고 꽃 색이 흰색인 것도 있다.
천리향은 서향나무 꽃으로 봄에 핀다. 확실히 천리향쪽이 만리향보다 향이 덜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쨌든 향기만으로도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마성의 꽃들. 천리향과 만리향.
개인적으로 향이 진한 꽃들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천리향과 만리향도 마찬가지. 가까이서 그 향은 아무리 좋아도 금방 질려 서둘러 발길을 돌려버리지만 멀리서 나는 이 꽃들의 향기는 오히려 발길을 붙잡고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 두리번 찾게 만든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무리 좋고 친한 사이라 해도 일정 거리를 두고 보아야지 가까이 친밀감을 강조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때가 생긴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애정은 폭력으로도 비유되듯이.
갈란투스꽃을 심어야 하는데... 올해도 그냥 넘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