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스크랩] 아라비아어.

fervour12 2008. 7. 13. 20:52

아라비아 문자도 히브리 문자와 마찬가지로 페니키아 알파벳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아라비아 비문은 512 - 5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슬람의 선지자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다니로 피신한 622년은 이슬람 기원의

헤지라의 시작이다.


전승에 따르면 이슬람의 성전 코란은 알라가 650년경에 아라비아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슬람교보다 약간 먼저 생겨난 아라비아 문자가 널리 퍼진 것은 전 세적으로 이슬람교의  급속히 팽창했기 때문이다.


아라비아 문자는 이슬람교도와 함께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인도, 중국일부의 지역을 정복했다.

이들 지역에서 모두 아라비아 문자 체계를 받아들였다.

서구 기독교체계가 사라센 족을 남부 유럽으로 몰아내지 않았다면 서유럽에서도 오늘날 아리비아 문자를 사용했을 것이란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스크립처(문자의 뜻)라고 말할 때 이것은 성경을 가리킨다.

코란의 문자도 ‘알라의 문자’였다.

고대 이집트인의 눈에 상형문자가 ‘신들의 문자’였다.


이 문자는 사람들이 해독하든 못하든 마땅히 경배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오늘날까지도 코란 학교에서는 자기네 마라 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라비아어로

코란을 공부한다.


이슬람교도들은 글씨를 신성하다고 여겼다.

예언자 마호메트는 알라의 말을 들은 그대로 직접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의 필사본에는 사람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이슬람교도의 성전인 코란에서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코란의 최초의 편집자이자 3대 칼리프인 우트만의 종교적 원칙을 존중하여

코란에 알라나 마호메트의 모습을 그려 넣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글자가 화려한 장식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아라비아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나갔다.

아라비아 서체의 진정한 장점은 무궁무진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교는 알라와 선지자 마호메트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게 한다.

일부 종파에서는 사람의 얼굴도 그리지 못하게 한다.


회교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글씨가 장식의 가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아라비아 서예는 예술가들이 모두 이 분야에만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최절정에 도달하게 되었다.

 

출처 : vmfkdlem
글쓴이 : fridry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