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어의 정원. 비에 녹아있는 연심(戀心)

fervour12 2013. 11. 25. 08:30

오늘에야 겨우 감상할 수 있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 내가 일본어, 게다가 고전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절대 입을 대지 않았겠지만... 제목 번역이 살짝...

 

 

 

 

원어 제목은 '言の葉の庭'. 사실 '언어의 정원'이라는 번역은 잘 맞지 않다. 내용과의 연관을 생각해도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言の葉’ 라는 것은 '언어'라는 의미보다는 '말', '문구'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게다가 현대어 번역이 그런 의미이고 다른 의미로 '和歌(일본 전통 시. 단가)'라고 하는 의미가 있다. 내용 중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歌集 '万葉集'巻11에 실려있는 2513, 2514번가가 나온다. 이 두 수의 노래는 연인들이 번갈아 부르는 사랑의 노래로 애니 전반에 걸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만약 내가 번역을 했다면 '우가(雨歌)의 정원'이라고 했을 듯.

 

철없는 어머니와 이기주의 형 덕분에 고 1인 타카오는 학교, 집 안 일,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의 유일한 일탈은 비가 오는 날 오전 근처 공원에 가서 구두 디자인을 스케치 하는 일.

 

자신만의 공간이었던 그 곳에 어느 날 낯선 여자, 유키노가 와 있다.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고 안주는 초콜렛뿐.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던 중 그녀가 말을 걸어온다. "어차피 인간이란 모두 조금씩은 어딘가 이상한 생물이니까"며. 그리고 그녀가 남긴 시가 한 수.

 

鳴る神の しましとよもし さし曇り 雨も降らぬか 君を留めむ

천둥이 조금씩 치며 별안간 흐려지네요. 비라도 내려주지 않을까요. 당신을 붙잡을 수 있을텐데...

 

그 시가의 의미를 궁금히 여기며 때마침 든 장마때문에 그녀와 자주 만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타카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유키노에 대한 마음이 커지자 구두 만드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된다. 어린 시절, 지금은 없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선물한 구두에 매료됐었다. 그에게 구두란 어른들의 전유물로 구두를 완성하는 것은 자신이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어른인 유키노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유키노는 직장에서의 문제로 인해 미각장애를 앓고 있다. 그녀가 느낄 수 있는 맛이라고는 알코올과 초콜렛 맛 뿐. 씁쓸한 맥주의 맛은 그녀가 처한 상황을 의미하며 달콤한 초콜렛은 그녀가 그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타카오 덕분에 조금씩 미각장애도, 자신의 문제와도 직면할 수 있게 된 유키노. 그리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조우한 두 사람. 덕분에 타카오는 유키노가 던진 시가에 답가를 알 수 있게 된다.

 

鳴る神の しましとよもし 降らずとも 我は留まらむ 妹し留めば

천둥이 조금씩 치고 비가 내리지 않아도 나는 머무를 것입니다. 당신이 붙잡아 준다면.

 

답가가 끝나자 세찬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들은 억눌러져 있던 그리움, 반가움과 감정에 대한 주저, 그리고 슬픔이라는 폭우가 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 애니는 일종의 성장 드라마로 볼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들 중 내가 보지 못한 '구름의 저편'이외는 다 성장드라마를 주로 하고 있는 듯.

 

썩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万葉集'가 나왔고 빗방울의 묘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계절 별로 다른 비의 느낌, 감정에 반응하는 빗방울의 모습.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 특제의 빛의 향연.

 

ost도 매우 좋았다. 하타 모토히로(秦基博)가 부른 <Rain>이라는 곡으로,오오에 센리(大江千里)의 <Rain>을 리메이크해서 불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ost가 너무 좋아 작품에 빠져들었다고나 할까.

 

그럼 감상해 보시길.